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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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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삼립의 첫걸음, 상미당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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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식품기업을 향한 작지만 큰 걸음

허창성 명예회장이 1945년 황해도 옹진에 문을 연 작은 제과점 상미당은 SPC그룹의 모태이자 국내 제빵 산업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불안한 정세로 1948년 서울로 자리를 옮겨 상미당을 재창업한 허창성 명예회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맛과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발상으로 탄생한 '무연탄 가마'는 생산 원가를 대폭 절감하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하여 상미당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무연탄 가마는 단순한 성공 사례를 넘어 우리나라 제빵 산업 성장에 기여한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삼립제과공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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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업화 위해 비스킷 생산에 뛰어들다

한국전쟁으로 문을 닫았던 허창성 명예회장은 휴전 후 서울로 돌아와 상미당 운영을 재개했습니다. '무연탄 가마'로 생산 원가를 절감하며 '맛 좋은 빵'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허창성 명예회장은 상미당의 성공에 힘입어 제빵업도 기업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1959년 삼립제과공사를 설립하고 용산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용산 공장은 비스킷 제조에 집중, 전국으로 유통망을 확장했습니다. 허창성 명예회장은 상표 디자인, 광고 전략 등 고객과의 접점에서 소비자 중심의 선진적 경영방식을 펼치며 기업 경영 체계를 현대화하기도 했습니다.

삼립산업제과공사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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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장려정책을 도약의 기회로 삼다

1960년대 정부의 분식장려정책으로 제빵업계가 활기를 띠었습니다. 삼립제과공사는 이를 기회로 삼아 1961년 삼립산업제과공사로 거듭나며 기존의 비스킷 외에도 빵 생산을 본격화했습니다. 수요 증가에 따라 1963년 대방동 공장을 완공하고 용산 공장의 시설을 이전했습니다. 허창성 명예회장은 기업의 체계적인 경영 체제를 갖추고 품질 중심의 경영을 추구했습니다. 삼립빵의 우수한 품질과 맛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킨 '고품질 전략'은 국내 양산빵 품질을 향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크림빵 신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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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빵 신화로 제빵업계 선두에 나서다

1963년 삼분 파동의 어려움 속에서 허창성 명예회장은 도쿄올림픽 참관단의 일원으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올림픽 경기보다 일본의 제빵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둘러본 일본의 제빵 공장의 자동화된 시설은 허창성 명예회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허창성 명예회장은 일본 방문을 계기로 재일교포 기술자를 초빙하고 주요 설비를 도입했습니다. 이로써 대방동 공장은 국내 제빵 기술 혁신의 장으로 거듭났고, 국내 최초로 식빵 생산 자동화가 시작됐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탄생한 크림빵은 국내 최초의 비닐 포장 제품으로 삼립을 최고의 제과제빵 기업으로 이끌었으며, 쫄깃한 빵과 부드러운 크림의 조화로 금세 국민 간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크림빵은 출시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추억의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삼립산업제빵공사로 상호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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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 공장 건설로 제빵 전문 기업의 면모를 갖추다

크림빵과 질 좋은 식빵의 히트로 급성장한 SPC삼립은 제빵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1966년 삼립산업제과공사에서 삼립산업제빵공사로 상호를 변경했습니다. 선진 제빵 기기를 도입하고 대방동 공장을 확장하며 생산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수요 증가에 부응하기 위해 가리봉동에 새 공장을 건설했고, 1990년에 이르기까지 증축을 거듭하며 대규모 제빵 공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 유명 대기업이 자본력만 믿고 제빵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SPC삼립은 이미 품질, 생산력,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 있어 그 누구도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편, 1968년에는 주한미군에 빵을 납품하는 군납업체로 지정되어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브랜드 인지도와 성장세를 더욱 확대했습니다.